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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길을 걷다 1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길을 걷다 1

-중국 윈난성 호도협

수허(束河)의 명물 대작교 앞에서 빠오처(다마스급 차로 빵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흔히 부르는 이름)를 렌트해서 호도협(虎跳峡, 후탸오샤) 입구 차오터우(桥头)로 향했다. 리장(丽江)에서 호도협으로 가는 길은 대략 2시간이 걸리지만 가는 길에 1년에 한번 있는 우시장이 열리기라도 하면 속절없이 흘러버리기 때문에 아침 7시에 출발해야 했다. 리장 신시가지를 지나 옥룡나시족자치현(玉龙纳西族自治县)으로 들어서면 끝없이 펼쳐지는 해바라기 밭과 복숭아 과수원이 펼쳐지고 가는 길 내내 차창 옆으로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운치 있게 흔들린다. 리장의 큰 호수 라스하이(拉市海)를 지날 즈음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우시장으로 가는 차들과 소떼들 때문이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길옆에서 파는 복숭아 한 소쿠리를 사서 나눠 먹었다. 중국의 여름 과일 중 단연 최고는 바로 복숭아다. 손톱으로 껍질을 까며 먹을 수 있는 물이 많고 아주 단 복숭아로부터 납작한 북경 복숭아까지 무엇을 먹든지 대 만족이다.

살찐 소들이 길을 막아주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우리가 일찍 출발을 했기에 많이 왔지만 저 뒤에 있는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갇혀있을까. 한국이라면 경적소리에 짜증이 더 했을 것이고 얌체 운전자들이 갓길로 가겠다며 요리조리 곡예 운전을 하며 체증을 더 했겠지만 조용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풍경을 연출한다. 만만디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하나 급한 사람 성질내는 사람이 없다. 상황을 관조하거나 즐기거나. 그러고 보니 도심에서 교통체증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 또한 훌륭하다. 흥분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상황을 그저 즐기고 있는 듯했다. 무질서로만 이야기되던 중국 나름의 질서. 이것이 바로 대륙의 느긋함이 아니겠는가. 멀리 라스하이의 갈대 숲 사이로 2인용 카약처럼 보이는 통나무배가 고요 속을 이등분하며 유유히 흘러간다. 중국의 끝인지 아니면 티벳의 끝인지 모르는 이 땅은 어찌 이리도 풍요로울까. 원래 그들의 땅이 아닌 곳을 처음부터 자기 것인 양 거드름을 피는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복잡하고 슬픈 역사를 숨긴 체 이곳은 처음처럼 평화롭고 따스하다.

빠오처는 다시 뚫린 길을 달려 양쯔강의 상류 진사강(金沙江)자락을 맞대고 지나간다. 전망대처럼 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워 화장실을 다녀왔다. 멀리보이는 합파설산(哈巴雪山)과 옥룡설산(玉龙雪山)이의 웅장함 사이로 흐르는 진사강. 끝없이 펼쳐진 계단 밭. 호도협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기를 걷게 되는 구나.

전망대에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라마사원이 나를 맞이했다. 여기서부터는 나시(纳西) 땅이 아니라 장족(藏族) 땅. 이곳을 들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종교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김밥 한 줄 만큼 굵고 화살만한 길이의 향에 불을 붙여 소원을 빌고 있다. 나무 불상 앞에는 1원짜리 1각 짜리 지폐들이 뒹굴고 있다.

차오터우에 도착한 우리는 빠오처 기사와 작별 인사를 했다. 조금 걸어가니 소학교가 보이고 소학교를 지나자 말들과 마부들이 보인다. 걸어서 오늘의 목적지까지 가고 싶었지만 초행이라 두려움도 있고 아이들의 체력 상태를 몰라 섣불리 걸어가지고 제안을 하지 못했다. 흥정 끝에 50위엔 씩 주고 28밴드 정상까지 말을 빌려 타기로 했다. 동생과 아이들은 오랫동안 말을 타게 되어 적잖게 흥분되었다. 그런데 말 자체가 우리나라 조랑말 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라 말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했다. 차오터우를 지나 호도협의 하이패스(high pass)로 접어들었다. 발아래 있는 풍경들이 마치 그림처럼 지나갔다. 차마고도의 낭떠러지 외길.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처럼 가느다랗고 끝없이 이어진 길.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이 길을 말에 탄 사람과 마부가 함께 걷는다. 헐벗은 마부의 얼굴에 땀이 쏟아진다. 미안했다. 한때는 그들의 전부였고 조상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가업이었을 것인데 세상이 변하여 이젠 샹그릴라의 송이와 옌징의 소금 대신 사람을 싣고 나른다. 그 옛날 마방이 티벳과 윈난의 죽음의 고개를 넘나들며 무역을 하던 것을 단돈 몇 천원에 사서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지금껏 현지인들의 생활방식 대로 현지인들의 식습관대로 따르고자 나름 노력했었는데 이건 착한 여행도 공정한 여행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잠시 마부의 따뜻한 미소에 잡생각들이 사라졌다.

출발 한지 두 시간 쯤 지나자 나시객잔에 도착하였다. 나시족의 전통 가옥에 식당 겸 숙소를 운영하는 곳이다. 마당에 있는 칭커차라는 샹그릴라식 건조대에 노란 옥수수가 걸려있다. 쌀과 밀이 부족한 이곳의 주식이 옥수수라는 것을 보여준다. 허나 우리는 먼 길을 가야하기에 볶음채 두 접시에 밥을 시켜 먹었다. 밥이라는 것이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풀풀 날리는 모래알 같은 안남미(安南米)지만 땀 흘린 후 먹는 밥은 꿀맛 같았다. 현수는 계속 되는 현지식에 비위가 상했는지 아껴둔 튜브고추장을 꺼내 밥에 비벼 먹었다. 고추장을 바르니 끈기 없는 밥이 찰밥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것이 이제껏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엄마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밥을 먹고 양치를 위해 화장실에 갔더니 실개천 위에 누각을 짓고 거기를 화장실로 이용하고 있었다. 천연 수세식. 어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곳은 원래 화장실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땅이었지만 트레커들을 위해 그들의 지혜를 쏟아냈다.

마부들은 점심을 먹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원래 하루 두 끼만 먹는 탓에 점심을 먹지 않고 말에게 풀을 먹이며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미안함이 더했다. 하루 종일 산을 점심도 거르며 오르락내리락해서 번 돈으로 무엇을 할까. 그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마저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내 눈에 비친 그는 북회귀선의 뜨거운 볕에 까맣게 타고 주름이 자글자글하여 나이조차도 가늠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또 다른 히말라야국가 부탄이라는 나라가 뽑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이 마부도 행복지수 100에 가까운 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말을 타고 산을 오르다 마부들의 쉼터에 왔을 즈음 주변 경치에 한눈을 팔다 그만 낙마하고 말았다. 갈비뼈와 팔꿈치를 땅에 심하게 부딪혔으나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무릎에 찰과상을 조금 입었다. 마부는 내가 괜찮은지 걱정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괜찮다고 하니 웃음을 지어 보인다. 중국어에 대해 서로가 부족해 어떻게 대화를 했는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이제부터 28밴드가 시작되니 너무 좁고 힘든 코스라 28밴드의 꼭대기까지 혼자서 말을 타고 올라가야한다고 했다. 오늘 트래킹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동생과 제자 둘이 보고 있는 탓에 먼저 말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 쉬는 곳도 없고 약간의 평지나 내리막도 없는 지그재그로 28번을 꺾어서 올라가야 하는 길. 나도 나지만 비탈길을 오르며 헐떡대는 말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내가 차라리 말을 등에 지고 가지 더는 못할 것 같았다. 워낙 비탈길을 타다보니 말에 탄 자세가 거시기해 허리도 아프고 숨도 차서 얼른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군대에서 행군할 때가 생각났다. 누구는 숨이 깔딱 넘어간다고 깔딱고개라 부르고, 누구는 영구네 강아지 땡칠이마냥 숨을 헐떡거린다고 땡칠이고개라 부르며, 또 누구는 이제 끝날 때가 됬는데 하면서 계속 상상하게 된다며 상상고개라 부르던 화천 백암산 고개가 생각났다. 잊은 줄 알았던 내 청춘과 눈물이 말라붙어 있던 왕자포대와 백암산. 28밴드는 끝이 없는 듯 보였고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위를 뛰며 온갖 상념에 잠기듯 잠시 동안 난 그곳이 너무 그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갑자기 28고개를 가로질러 마부들이 뛰어 올라갔다. 이제 말을 몰고 돌아가야 된다는 것이다. 난 이곳을 감히 뛰어 올라가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확실히 다른 심장을 가졌다. 고산에 사는 케냐나 에티오피아 사람들처럼 이들도 육상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 못지않은 성적을 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28밴드에 정상에 도착했다. 잠시나마 가족이라 생각했었는데 외마디 ‘짜이찌엔’을 외치며 마부와 말들과 헤어졌다. 너무 쉽게 만났고 너무 쉽게 헤어졌다. 그는 내가 수백 명의 손님 중 하나겠지만 나는 그가 다시 그립다. 지금쯤 내려가면 또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있을까.

맞은편 옥룡설산에서 찬바람이 불어온다. 5천미터급 13봉을 거느린 거대한 산. 한 여름인데 빙하도 얼어붙어 있었고 족히 100미터는 넘어 보이는 폭포도 보인다. 내가 서있는 곳은 합파설산의 허리다. 하나님의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5천미터가 넘는 합파설산과 옥룡설산이 형제처럼 나란히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사이를 양쯔강의 상류 진사강이 흐른다는 것이 도저히 과학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내가 강줄기라면 거기를 지나느니 차라리 두 산을 크게 돌아 천천히 흐르고 싶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찌나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지 합파설산에서 포수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막다른 바위에 다다르자 점프를 해서 강을 건너 맞은편 옥룡설산으로 도망갔다는 전설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호도협이 되었다고 하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거기를 걷고 있다.

어디든 포토 포인트가 되겠지만 그중 기가 막힌 곳이 보여 그곳으로 달려가자 할머니 한분이 늙은 오이를 팔고 있었다. 저 무거운 다라이와 생수와 오이를 들고 어떻게 여기를 올라왔을까. 할머니가 저걸 다시 들고 내려가면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걱정이 되어 얼른 늙은 오이를 하나 샀다. 생긴 건 어릴 적 밭에서 따먹던 조선오이처럼 생겼으나 맛은 청량감이 도는 참외 맛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이제 오이도 먹었으니 사진을 찍어볼까. 그런데 순박해 보이는 할머니께서 돈을 달라고 했다. 보는 건 공짜 사진 찍으려면 돈을 내라고 한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팔아먹은 얘기는 들었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빛은 강렬했고 우리는 적당히 깎아 사진을 찍었다. 운무 때문에 맞은편 옥룡설산의 위용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말도 마부도 없고 오직 허름한 지도와 직관에 의존하여 걸어야 했다. 다행히 서양 여행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코스라 가는 길 곳곳에 만나는 바위들엔 객잔으로 가는 길이 영어로 씌어져 있었다. 족히 2000미터는 넘어 보이는 까마득히 보이는 강물과 그 위를 지나는 로우패스(low pass), 또 그 위를 따라 계단식 논과 밭이 이어졌고 간간히 보이는 집들과 소치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지나는 길 위를 덮어주는 야생 호두나무들. 갑자기 남우가 호두가 많아 호도협인지 진지하게 물었다. 한자를 몰라 그런 것이겠지만 그럴싸했다.
  동생은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고 오늘 밤 우리의 숙소가 될 차마객잔(马客栈)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에는 깎아지는 듯한 절벽과 바위산 무섭게 흘러가는 강물만 보일 뿐 마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그림 같은 풍경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 길 끝에 차마객잔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내가 가는 길이 이랬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난 분명히 목표가 있고 그 푯대가 보이 않아도 확신하며 즐겁게 걷고 뛸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길을 걷고 있다.

멀리 차마객잔이 보인다. 표준방으로 잡고 샤워를 했다. 해가 아직 지지 않아 태양열 보일러에서 따뜻한 물이 나왔다. 발아, 너 오늘 고생 많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여기서 더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먼저 온 트레커(trekker)들과 함께 객잔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KBS에서 방영한 차마고도 다큐멘터리의 영향인지 서양 트레커들만 오가던 이곳이 이제 6대 4정도로 한국인이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일본인과 중국인은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은 힘들게 트레킹 하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한다.

몹시 시장했다. 객잔 주인은 오골계를 한 마리 들어 보이며 흥정을 시작했다. 방금까지 밖에서 뛰어다니던 놈이 곧 백숙으로 변해 나왔다. 먼저 닭 육수를 들이키고 고기와 죽을 먹었다. 반찬으로 김치까지 나온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러운 만찬을 마쳤지만 뭔가 아쉽다. 외국에서 먹는 한국 음식에 입맛은 살아날지 몰라도 어쩌면 여행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맛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현수가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차마고도 한가운데서 국제전화라. 엄마 대신 받은 두 살 많은 누나에게 눈물을 쏟았다. 이내 눈물을 거두고 자신이 본 엄청난 대자연을 설명하고 있지만 누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다만 동생이 안녕한지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객잔의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두 설산 사이로 달이 떠오르고 별이 쏟아져 내렸다. 어릴 적 자다가 일어나 마당의 거름자리에 오줌을 누며 보던 바로 그 별들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머리 위가 북두칠성이 아니라 백조와 거문고가 자리를 차지해 유난히 희고도 파랗게 빛을 뿜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밝혀주던 희미한 전깃불도 더 이상 빛을 낼 수 없었다. 내일은 또 어떤 길을 걸을까. 생각이 많아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정보를 교환하고 올 걸 괜한 후회가 생긴다. 혼자만의 여행이면 몰라도 동생과 아이 둘을 데리고 가려니 걱정이 된다. 초행길에서의 길라잡이라 내가 생각해도 무식하고 용감했다. 오늘은 잘 진행했지만 내일은 오늘 만큼 순조로울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김제동이 ‘오 마이 텐트’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모든 오르막과 내리막은 길 위에서 비기고, 다 가고 다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힘들게만 느껴진 오늘의 행군도 너무 좋았고 내일 역시 좋겠지. 현수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난 역시 행운아야.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이것이 진리다. 힘들었던 오늘도 추억하는 날이 곧 오겠지. 그래,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길은 평탄하다. 세상 끝에도 계시는 그분께 감사하며 차마(马)에서 맞는 처음이자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코스 소개

리장에서 북쪽으로 50여 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호도협은 포수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금사강 중앙에 있는 돌을 딛고 강을 건넜다 해서 이름 지어진 협곡이다. 윈난성의 대표적인 트래킹코스로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해발 5,596m의 옥룡설산과 5,396m의 합파설산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협곡이다. 장강의 최상류 금사강과 나시족의 성산 옥룡설산, 그리고 티베트인의 성산 합파설산이 만들어낸 협곡의 풍경을 즐기며 걷는다. 트레킹은 합파설산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걷는 약 22km 길이. 금사강의 옥빛 물결과 옥룡설산의 은빛 봉우리를 바라보며 걷는다. 최소 1박 2일, 걷는 데만 11시간 이상 소요된다. 협곡의 폭이 가장 좁은 상도협의 한 곳에는 호랑이가 딛고 건너뛰었다는 호도석(虎跳石)이 서 있다. 호도협은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협곡이다. 중국인들이 오지 않은 관광지라 입장료와 모든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


찾아가는 법

윈난성의 쿤밍까지 직항편이 있다. 쿤밍에서 리장까지는 국내선 비행기로 50분 정도, 또는 버스로 8시간이 걸린다. 리장 버스터미널에서 호도협 입구인 차오터우까지 버스로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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