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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티벳 여행을 시작하며

 
청두 - 야안 - 루딩 - 캉딩 - 신두차오 - 리탕 - 따오청 - 르와 - 야딩 - 르와 - 따오청 - 샹청 - 샹그릴라 - 리장 - 수구 - 샹핑즈 - 리장 - 쿤밍 - 청두
 
지도 한 장만 들고 동티벳 정탐이란 이름으로 청두행 비행기를 탔다.
아내는 '잘가라, 그리고 꼭 돌아오라'는 말만 하니 정말로 미안했다. 
동행을 구하려했지만 평균 해발 4000미터의 험한 길이라 잘 다녀오란 말만 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1차 등록했던 좋은교사대회를 취소하고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청두의 첫인상은 강했다.
습도 95% 섭씨 39도의 날씨가 다섯달이나 계속된다는 그야말로 한증막의 도시.
숨이 막혔다.
아니나 다를까 한밤에 내린 공항의 공기는 정말 살인적이었다.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켜두어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다.
잠이 잤는지 안잤는지 모를 정도로 뒤척이다 일어나 큐티를 했다.
수증기막이라 해야할지 스모그라해야할지 해가 떴는지 안떴는지도 모르겠다.
청두의 개들은 해를 보고 짖는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 싶다.
2층 빈관의 식당
엄청난 인파가 밥을 먹고 있다.
사천성에는 이름난 관광지가 많아 여름 휴가철에는 거의 모든 호텔이 만원이란다.
중국 인구를 셀 수 없다는 말을 또 한번 실감했다.
여기를 얼른 뜨자.
몇 시간을 구름이 있는지 없는지 해가 떴는지 안떴는지도 모른 채 고속도로를 달리다
야안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야안은 육로로 티벳을 가는 차들이 미리 정비하여 가는 곳이라
온갖 카센터들이 즐비했다.
그중 한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다.
여기서 먹는 밥이 중국의 마지막 밥이라 생각하고 먹었다.
 
사실 여기까지 중국이고 앞으로는 티벳이다.
굳이 구별하고 싶진 않지만 정말 다르다.
티벳의 원래 영토는 지금의 시짱자치구 뿐만 아니라 윈난과 쓰촨 칭하이성 모두가 티벳의 땅이었다.
그 중 마지막까지 발악하며 청산리 봉오동 전투를 하던 곳이 바로 오늘 저녁에 묵을 캉딩이다.
티벳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험했다.
왕복 2차선의 움푹 패인 길.
그것도 과적 차량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간간히 라싸로 가는 자전거순례객들이 눈요기를 하게 나타났지만
협곡 사잇길은 여간 스릴이 넘치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200미터마다 있는 수력발전소.
하긴 하루에 해발 고도가 몇천미터씩이나 달라지는 곳이니 중국이 이를 버릴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년전 쓰촨성 대지진의 피해가 이런 수천개의 작은 댐 때문이지 않았는가.
길은 굽이굽이 물은 정말 겁나게 달리고 있다.
그런데 갑작스런 정체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구경한다.
산사태가 난 건지 아님 사고가 난 건지 연유를 알 수 없지만 다들 구경만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짜증이 나 참을 수 없겠지만
아무도 화를 내지 않고 간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길이 뚫렸다.
부지런히 달려 얼량산 고개를 넘었다.
여기도 또 다른 세상이다.
이제 루딩.
루딩에서 캉딩까지는 20킬로 정도다.
캉딩의 뒷산은 포마산이다.
그리고 그 뒷산은 공가산으로 7556미터나 된다.
히말라야를 제외하고선 중국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가산을 보고 싶어 캉딩으로 온 여행객들 때문에 시내의 호텔은 전부 만원이다.
일곱곳을 돌아 겨우 잡은 방.
벼룩이 뛸 것 같은 묘한 냄새가 난다.
에프킬라로 온방을 방역한 후 길을 나섰다.
고생을 많이 했으니 맛있는 밥을 먹어야지.
송이버섯으로 요리를 하는집을 발견했다.
티벳의 송이. 이제 시작이다.
그때가진 중국식 요리가 여기가 마지막일 줄 몰랐다.
배불리 먹었지만 거리를 나서자 추웠다.
8월1일에 겨울 잠바라.
인민광장에서는 엄청난 인파가 춤을 춘다.
캉딩정가라는 아리랑처럼 끝나지 않는 노래에 맞춰.
동심원을 그린 사람은 모두 캉딩 사람
그리고 중국인들과 서양코쟁이들이 연신 사진을 찍고 있다.
캉딩사람들 인물이 장난이 아니다.
온통 장동건 전지현 천지다.
남자키는 평균 180.
여자도 165는 큰편이 아니다.
뭘 먹고 저리 자랐나.
난 온갖 거 다먹어도 이것밖에 안되는데.
그리고 인물은 또...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는 외모를 세심하게 말씀하셨나.
저녁여덟시가 다 지났는데 여전히 해가 있다.
넓은 중국이다.
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부지런히 미셴을 먹고 길을 나섰다.
공가산의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7000미터 주봉 1개에 5000미터급 50여개의 산과 만년 빙하.
하지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캉딩을 뒤로 하고
이제 신두차오로 넘어간다.
4천 몇백미터의 고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고
이층 버스는 잘도 달린다.
 
 
 
산에 나무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수목 한계선을 넘어서 그러리라.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과 초원 그리고 야크떼들.
전혀 또다른 세상이다.
 
어디서 왔을까.
갑자기 빵차들이 모이더니만 송이번개 시장이 열렸다.
라마들까지 나타나 바람을 잡는다.
정말 향 좋고 품질 좋은 송이들이
여기에선 한국의 새송이버섯보다 싸다.
얼른 사 라면으로 끓여먹었다.
뜨겁지도 않는데 끓는다.
라면은 불려먹어야겠다.
값비싼 라면에 천박한 송이라 그 조합이 과연 최고다.
 
남들 다 고생한다는 고산증도 없고 앞으로 남은 열흘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