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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티벳 여행기 5. 야딩코라 후편

 
갑자기 야크를 치던 노인 두분이 나타나 말을 걸기 시작한다.
현지인이 아닌 사람이 가기엔 너무 힘드니 말을 빌려 가라고.
하지만 "뿌야올러!"
하며 가볍게 웃으며 흥정을 시작하려는 노인들을 따돌렸다.
지도를 잘못 본 탓에 나중에 어떤 고생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내 자신을 자신했다.
그냥 지도만 보고
여기 지옥고개가 약 4750미터이니 이제 충고사까지 내리막길만 있는 줄 알았다.
이제 얼마 안가서 처음 출발한 곳으로 가리라 생각하니 새로운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내가 야크같은 심장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오늘 컨디션이 특별히 좋은 것인지
이제 노래까지 입에서 흥얼거린다.
 
어디서 왔는지 구름이 앞을 가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너무나도 몽환적인 느낌인지라
그것도 시시각각 바뀌고
과연 여기가 현실의 세계인지 아니면
내가 조난을 당해 천국을 향해 가는지 가물거렸다.
 
 
또 하나의 호수가 보인다.
수정해.
앞에서 본 오색해나 우유해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주는 호수다.
구름 알갱이들이 시야를 자꾸만 가린다.
 
 
그러더니 얼만큼 지나니 또 열어주는구나.
놀랍다.
 
호수를 뒤로한 채 다시 올라간다.
여기가 잠시 오르는 오르막이리라 생각하며 오르니 다리에 힘이 붙는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 색이란 놀라우리만큼 파랗다.
이번 여행 사진들은 전혀 포토샵을 건들지 않아도 웬만하면 달력 사진같은 장면을 연출한다. 
 
잠깐 동안의 오르막일 줄 알았더니만 아니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숨이 목에까지 차올랐다.
한번 걸음에 10미터를 채 못가고 헐떡거렸다.
 
다행히 곧 타르쵸가 나왔다.
언덕에 다달았다는 것.
그러나 저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새 힘은 언제 주시나요?
걷는 것이 왜 이리도 힘이든지요.
사진찍자는데 귀찮아 아니 힘들어 죽겠다.
 
이제 다시 내리막.
움하하.
이대로 계속 간다면 충고사가 나올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손이며 발이며 팔꿈치까지 퉁퉁부었고
엄지발가락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단지 걷기만 했을 뿐인데
고산이 무섭기는 무섭구나.
 
한참을 가니 시내가 나온다.
아마도 이건 지도에 나오는 카스로 흘러가는 물줄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도 그들의 신앙을 돌로 쌓아 표시했다.
난 사뿐히 즈려밟고 갈 뿐이고.
 
한참을 또 올라가는 길이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걸어가니 정말 답답하다.
아니 벌써 마을일까
집들이 보이는 것이다.
 
아, 가까이서 보니 너와가 아니라 마니퇴로 만든 막사였다.
돌이다 돌집.
사람은 살지 않는.
다만 코라를 하는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하룻밤을 자기 위해 만든.
지금 컨디션으로는 여기서 자야겠지만
침낭은 숙소에 있고
불도 없고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한떼의 까마귀가 막사 위에 있다가 날아간다.
 
어찌된 게야.
계속해서 오르막이다.
시간은 벌써 저녁 6시를 향해 가는데
앞도 안보이고 길은 모르겠고
이러다 객지에서 변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세르파!
난 더이상 갈 수 없어요.
안됩니다. 힘을 내시오.
이런 비까지 쏟아진다.
추웠다. 너무 추웠다.
내가 이대로 조난당하는 걸까.
 
그때 갑자기 판쵸를 입은 백수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산에서 나타났다.
이건 뭐 완전히 갼달프나
흡사 모세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우산을 펴주고 고어텍스 자켓을 갈아입게 도와주었다.
"할아버지, 말이라도 타고 내려가고 싶어요!"
"힘을 내시오. 말은 없소."
"그런데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내 야크 찾으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합니까?"
"저리로 가시오!"
그러곤 할아버지는 사라지셨다.
내가 홀린 건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가 왔다 간건지.
이 시간에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다니
지금 야크를 찾을 시간도 넘은 것 같은데
여하튼 그가 손가락질 한 곳은 산꼭대기였다.
 
저기가 거기구나.
어라.
여기저기 마니퇴에 옷이며 모자며 신발 장갑 속옷까지 정성스럽게 입혀져있다.
아주 값비싼 금이나 은 장신구도
마노나 터키석 목걸이도 걸려있구.
"이게 뭡니까?"
"이생의 모든 것을 버려야 그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아, 그런 상징적인 것이었구나.
주워서 가고 싶었지만 그들의 정성에 나쁜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저길 어떻게 올라갑니까.
"제 손을 잡아요."
"힘들텐데......"
난 그가 시키는데 손을 잡고 그와 같은 페이스로 걸었다.
이상하리만큼 쉽게 산을 오른다.
마치 반지의 제왕 마지막처럼.
드디어 올라가는구나.
 
 
 
여기가 천국의 문인양
흔들리는 타르쵸가 열방의 깃발인양 그렇게 난 야딩을 밟았다.
할렐루야.
타르쵸 중 하나를 풀어 배낭에 넣었다.
여기가 정상은 아니지만 나의 정상은 확실하다.
찬송이 흘러 나왔다.
또한
여호와가 주는 새 힘을 누리며 무서운 속도로 내려갔다.
벌써 7시가 넘지 않았는가.
가는 길도 역시 새로운 풍경이었다.
여지껏  본 야크 중 가장 큰 넘들이 떼로 있는 것도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뛰어내려왔을즈음.
하늘이 열려 션나이러가 다시 얼굴을 내밀어준다.
 
내 눈엔 해는 이미 사라졌고
거대한 산만 보인다.
 
너무 급히 내려왔나.
배부터 머리까지 활처럼 휜다.
나도 모르게 토가 나왔다.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데 뭐가 나오겠는가.
한참을 헛구역질하니 아침에 먹었던 수요차 냄새가 난다.
어질어질한 것이 쓰러지겠다.
 
오 하나님 이건 또 뭡니까.
 
한떼의 야크와 야크젖을 짜고 있는 할아버지.
젖 한잔 먹기를 권했다.
세상에 또 한번의 기적을 맛보았다.
할아버지와 두 손자들이 있는 막사로 들어갔다.
불을 쪼이니 몸이 녹고 내가 다시 살아났다.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8시가 넘었다.
벌써 출발한지 12시간이 지났다.
얼른 출발해야지.
길을 나서자 또 한번의 영상쇼를 보고 감탄했다.
무지개 그것도 쌍으로.
하나님의 약속.
 
 
원시림을 지나 진주해가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이게 마지막 빛이었다.
 
물소리를 이정표 삼아 내려가서 밤 9시 30분이 되어 숙소로 도착했다.
티벳탄들이 평생의 소원인 야딩코라.
내가 야딩코라를 훌륭히 해내었다.
당신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