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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티벳 여행기 3. 야딩 코라를 준비하며


 
리탕초원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따오청을 향해 달려간다.
행여나 프레디독을 만날까 눈을 부릅뜨고 차창 밖을 봤지만 볼 수 없었다.
여행자의 눈에 풍요롭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리탕초원도 어느새 지나가버리고
하이즈산 괴암군이 눈에 들어왔다.
백여킬로 이런 돌들만 뒹구는 무인 혹성 같은 광야.
도무지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어보이건만
10여분만에 간혹 한 사람씩 야크를 치는 사람이 나타나곤 한다.
 
지루한 하이즈산 광야를 지나자 또다시 초원.
방목하던 야크 떼를 지키던 장족 소년.
12살 정도 되어보이던 그에게 색연필세트를 주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해맑은 웃음.
 
아직 소학교에 다닌다면 곧 방학이 끝날테고 기숙사로 들어가겠지.
짧은 여름 어느날 한국인에 대한 기억이 좋게 새겨지길 바란다.
훗날 다른 한국선교사님이 들어갔을 때
친절한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길.
 
티벳의 아이들 대부분은 소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다.
작년 불산의 빠메이소학교 기숙사를 보았을 때 모습이 눈앞에 아른하다.
기숙사라 하기엔 가축의 우리에 가까운.
 
따오청에 들어서자 자작나무 숲이 반겨주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광야에서 만난 자작나무숲은
자일리톨 따위를 생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워 보였다.
이제 내일이면 야딩코라를 돌기 위해 장을 봐야한다.
시장으로 들어서자 야크 외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장 같았다.
야크생고기, 야크말린고기, 야크기름, 야크젖, 야크요구르트, 야크버터.
과일이나 채소를 좀 사려했지만
탱자만한 사과가 전부였다.
맛을 보니 옛날 먹었던 홍옥맛 사과.
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공산품을 파는 구멍가게로 갔더니만
더더욱 고를 것이 없었다.
식품이란 것 자체가 통조림이나 레토르토 식품인데
그것도 난생 보도 듣도 못한 것들이다.
이름은 수퍼마켓(超市)이지만 손델 것이 없구나.
여기에 비한다면 아까 시장은 홈플러스나 이마트 정도 수준임을 깨달았다.
아, 스니커즈가 있다.
스니커즈 몇개랑 쌀과자를 샀다.
썩은두부양념조림 몇 봉지.
주인이 고추절임닭발을 권한다.
먹어볼까.
다시 시장으로 갈까 하다가 4킬로 떨어진 루뿌차카 온천으로 갔다.
해발 3700의 10위안짜리 온천.
68도란다.
어떤 성분이 들어잇는지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고
온도 조절도 안되지만 이게 웬 호산가.
며칠동안의 빨래를 하고 나왔다.
몸이 퍼진다.
손발가락 마디가 퉁퉁부어올라 벌에 쏘인 것처럼 허옇게 변했다.
아 이대로 컨디션조절 실패하는 걸까.
얼른 야딩으로 가자.
르와현 이제는 샹그릴라향이다.
운남의 샹그릴라현과는 다른 곳이다.
제임스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혜영누나는 중학교 때 읽었다는데 나는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다.)의
실제 장소가 어딘가 찾고 있을 때에
중국정부가 운남의 중덴을 '샹그릴라' 라고 명명하여
한해 200만명이나 다녀가는 엄청난 관광지로 바꿔버렸다.
물론 중덴이 아름답긴 해도 실제 샹그릴라와는 차이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티벳을 좋아하고 산을 잘타는 사람들 사이에선
중덴이 샹그릴라가 아니라 야딩이 샹그릴라라고 주장한다.
그러하여 중국에서는 비슷한 위치의 전혀 다른 두 곳이 어느날 갑자기 지명이 샹그릴라가 되었다.
중국이니까 가능하다.
샹그릴라향에서 스무구비를 넘어 해발3900미터의 야딩촌으로 왔을 때 저녁이었다.
 
바로 구름 뒤의 설산이 야딩의 주봉 션나이르산이다.
그런데 컨디션이 영 아니다.
밤새 헤드랜턴을 켰다 껐다하며 화장실도 들락거리다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 민박 주인이 세르파에게 코라를 할 수 있나며 물었다.
나의 중국어도 아주 얇팍하지만
티벳탄들의 사성도 없는 중국어도 듣기 편하다.
"타 이에 헌 하오!"
헐 난 지금 너무 힘든데.
구름이 잔뜩낀 날씨가 심상치 않아 보이지만
사흘을 비가 내렸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라며 수요차가 너를 건강하게 할 것이란다.
짬빠(티벳보릿가루)도 권했으나
지금 상태론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수유차 한잔으로 발걸음을 뗀다.
현지인 남자가 9시간
외지인은 거의 12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코라.
티벳탄을이 평생을 거쳐 순례한다는 수미산(kailash), 매리설산, 야딩 코라 중 하나를 이제 시작하려 한다.
"짜시뗄레!"
민박 주인은 신의 가호를 바란다며 나와 세르파를 야딩 속으로 떠밀었다.